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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연평해전 당시 북한 군부와 北 경비정 교신 기록 최초 공개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이틀 전 도발징후 묵살한 김대중 정부

“불당소리 들리나”(北 8전대사령부)
“포성소리 들린다”(北 경비정 388호)

⊙ “제2 연평해전은 金正日의 지시에 의해 해군사령부가 직접 지휘한 도발”
⊙ 해군작전사령부 분석문건, ‘6월 27일 北 등산곶 경비정 강력한 사격의지 보였다’
⊙ 확전 우려한 ‘보복사격 중지’로 북한에 잘못된 신호 보내 천안함·연평도 사건 유발
⊙ 한미연합사 한국 측, 對美보안으로 美와 도발정보 공유하지 않아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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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月刊朝鮮)은 2002년 제2 연평해전 당시 우리측의 참수리 357호 고속정과 교전을 벌인 북한 경비정들이 북한 군부와 나눈 교신 내용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제2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경,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이 아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적으로 공격한 무력도발이다. 30여 분간의 전투 끝에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교신 내용을 살펴보면, 김대중(金大中) 정부하에서 제2 연평해전의 성격을 ‘적(敵)의 의도적 도발’이 아닌 ‘경비정 단독 범행’ 등으로 몰았던 것들이 허구였음이 드러난다. 당시의 논란을 잠재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교신 내용은 제2 연평해전 당시 대북(對北) 감시부대가 수집해 국방부장관, 국방정보본부, 합참작전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 관련 부대에 통보한 내용으로, 통상 특수정보(SI·Special Intelligence)라고 불린다. 이와 함께 《월간조선》은 제2 연평해전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북한 감시부대가 북한 경비정의 결정적 도발징후를 포착한 ‘SI 15자’도 전격 공개한다. 이에 따라, 당시 군 지휘부의 정보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교신 내용을 보면, 당초 서해교전이 북한 8전대사령부 주도로 이뤄졌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서해함대사령부 이상급에서 도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2 연평해전 당일 해전이 종료되기 직전, 황해도 소재 신천통신중계소가 북한군 해군사령부의 지시사항을 8전대사령부로 중계하고 있었다.
 
 
  “신천중계소 중계는 서해함대 이상 부대가 간여했다는 증거”
 
2002년 10월 4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당시 5679부대장(소장)이 서해교전 직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보보고서를 올렸다면서 블랙북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 끝에 한 장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은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이다.
  공개한 교신 내용은 긴급 시초보고(기지첩보 또는 생첩보)다. SI는 긴급 시초보고, 낱(단편)첩보, 종합정보보고서(블랙북)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전파된다. 북한군이 직접 교신한 내용을 기지에서 수집해 정보 가공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해당부대에 통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군의 노골적인 도발적 용어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군 관계자는 “신천중계소가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이상의 상급부대를 위한 중계소임을 감안할 때, 최소한 서해함대사령부 이상의 상급부대가 간여돼 있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했다. 당일 그 시각 즈음, 신천중계소는 8전대사령부에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8전대에) 전해달라”라고 통보했다. ‘사격’과 경비정의 ‘이탈’을 언급하며 8전대에 사격을 마쳤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는 내용을 경비정에 ‘통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군 관계자는 이렇게 해석했다.
 
  “북 해군사령부와 서해함대사령부는 선제공격 보고를 8전대사령부로부터 받고 교전한 684호에 직접 신천중계소를 통해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통신 결속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교신이 불가능하자, 8전대사령부에 684호와 통신해서 현장을 빠져나오라는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선제공격을 했으므로 ‘이탈’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해전 당일 북 해군사령부의 지시 내용은 우리 측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특보의 “우발적 경비정 단독 도발행위”, “8전대 이상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연합사가 공식적으로 통보해 왔다”는 주장과 전적으로 배치된다.
 
  임동원 특보는 당시 북한의 도발을 “아랫사람들(경비정)이 한 일”이라고 통보해 왔다고 언급했다. 임 특보는 저서 《피스메이커》에서 제2 연평해전과 관련, “이튿날 아침 북측은 핫라인을 통해 ‘이 사건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성을 띤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랫사람들끼리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고였음이 확인됐다’며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긴급통지문을 보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임 특보는 또 저서에 “며칠 후 한미연합사령관이 ‘제8전대 이상의 상급부대에서 도발했다’는 징후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정보판단을 공식 통보해 왔다”라고 기술했다.
 
  북한 감시부대가 수집한 통신 중계소의 중계 내용, 즉 황해도 소재 통신 중계소가 해군사령부의 지시사항을 8전대사령부로 중계한 사실과 내용을 보면, 임 특보의 진술은 사실 왜곡인 셈이다.
 
  북한 감시부대장을 지낸 한철용(韓哲鏞) 장군(육사 26기·예비역 육군소장)은 2010년 4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제2 연평해전 당시 8전대사령부는 3차례 ‘발포’를 포함하는 대남공격을 지시했다”며 “아랫사람들끼리의 우발적 도발이 아니라 8전대사령부가 도발을 지시했다”고 밝혔었다.
 
  군 관계자는 “도발 이틀 전인 6월 27일에도 신천중계소가 경비정과 직접 통신 결속을 시도하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면서 “이는 해군사령부가 중간 제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휘했다는 증거”라고 했다.
 
 
  “해군사령관 김윤심이 총 지휘”
 
북한 해군사령관 김윤심 대장.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통일전선부 요원으로 있다 2004년 탈북한 시인 장진성씨(뉴포커스 대표)는 “제2차 서해교전은 통전부의 기획안에 따라 북한 해군사령부 김윤심 대장이 총지휘한 사건”이라며 “당시 경비정(684호) 함장이 평양에 급거 다녀왔다”고 진술했다. 김윤심은 제1차 연평해전의 주역으로 서해함대사령관으로 근무하다 제2차 연평해전이 발발하기 전인 2002년 4월 13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의 뒤를 이어 해군사령관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장 대표는 “김정일은 2002년 5월 1일 국제노동절에 맞춰 공장시찰을 하던 전통을 깨고 불쑥 해군사령부를 시찰해 서해교전과 관련한 점검을 했다”면서 “5월 2일자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일 가까이 있던 군인들 대부분이 연평해전 참전자들”이라고 했다.
 
  그는 “통전부가 2차 서해교전을 서울월드컵이 진행되던 때로 정한 것은 NLL전략의 연장선에서 북방한계선 문제를 국제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해군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일은 ‘남조선 함정과 전투하려면 함선에 방탄철갑을 입히는 것보다 T-34 전차포를 부착하고 소련제 다발식 고사총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화력을 보강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일은 월드컵 기간 중 대놓고 군사교전을 벌인 것에 대한 국제비난이 집중되자, 그 모든 책임을 8전대사령관 등 애매한 장성 몇 명만 해임시키는 방법으로 돌렸다”며 “그들은 훗날 명예회복은 물론, 영웅으로 내세워 남한에 대한 적대선전의 주인공들로 활용했다”고 했다.
 
  그는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병원에서 제2 연평해전 부상병을 대상으로 교전 상황을 청취했다. 그는 “통전부 국장과 함께 ‘취재대상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고, 인민무력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병동에서 교전소감을 청취했다”며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입은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했다.
 
 
  金正日, 해전결과 직접 보고받았을 가능성 배제 못 해
 
지난해 6월 29일 제9주기 제2 연평해전 기념식이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렸다. 이날 개관한 서해수호관에서 당시 손에 상처를 입은 권기형씨가 당시 교전 때 사용했던 무기를 가리키고 있다.
  제2차 연평해전 이튿날인 6월 30일, 8전대사령부를 이륙한 헬기 2대가 평양 북방 민간 비행장인 순안 비행장에 착륙했다. 인공위성 사진에 의하면, 당시 헬기 2대가 착륙한 비행장에 세단 1대와 중형버스 1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식별됐다.
 
  한철용 장군은 “국방부와 북한 감시부대는 ‘부상자 수송인가, 작전 진두지휘 군고위층 수송인가’에 대해 위성사진 판독을 놓고 대립했다”면서 “국방부는 해전 부상자 수송이고, 북한 감시부대는 현지에서 작전을 진두지휘한 북한군 고위층 수송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북한 감시부대가 군 고위층 수송이라고 주장한 이유는 환자 수송이라면 첫째, 세단과 중형버스 대신에 구급차(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어야 하고, 둘째 군 병원(인민군 11병원은 대동강 남쪽에 위치)이 아닌 굳이 평양 북방 순안 비행장까지 날아갈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 장군은 “김정일이 특각(별장)에서 직접 전과(戰果)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확증은 없지만 김정일이가 어떤 방법으로든 해전에 관여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라고 했다.
 
  김정일은 대남 도발을 하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는 지하시설이 있는 특각에 숨어 지내는 습성이 있다. 당시에도 평소 애용하는 묘향산 특각이나 평양 북방 근교의 자모산 특각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군 고위층이 탑승한 헬기 2대가 순안 비행장에 착륙한 것도 김정일에게 해전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자모산 특각이나 묘향산 특각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전상황만 중계한 北 388호 경비정
 
  북 경비정 684호와 또 다른 경비정 388호 등 총 2척이 NLL을 월선해 침범하면서 제2 연평해전은 시작됐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북 8전대사령부는 신천중계소를 통해 오전 10시25분 교전이 벌어지기 약 1시간 전에 이미 “684호 등산곶 동남 4NM 구역 차지할 것”(오전 9시28분), “388호 등산곶 동남 6NM 구역 차지할 것”(오전 9시31분) 등 이미 경비정의 기동지시 구역을 NLL 이남지역으로 지정하고 있어, 명백하게 의도적 도발임을 보여주고 있다.
 
  388호는 우리 고속정 편대(2척)를 유인해 분산시킨 후 안전을 위해 기동하겠다고 8전대에 보고한다. 오전 10시15분 경비정 684호는 교전 직전 8전대사령부에 “고속정(참수리 357호)이 3NM까지 접근했다”라고 보고했고, 오전 10시20분 경비정 388호가 8전대사령부에 “고속정 두 척이 대기동하므로 혼란스럽다”고 보고한다. 이는 교전을 중계하려는 388호가 자신이 보호받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 기동하겠다”고 보고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684호가 참수리호를 공격해 교전이 벌어지면 자신이 위험하니까 교전 중계를 위해 안전한 지역으로 기동하겠다는 뜻”이라면서 “사전에 이미 전투상황을 중계하기 위해 388호가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의미”라고 했다. 교전에 참여한 684호가 파괴돼 통신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388호가 중계를 시도한 것이다.
 
2009년 12월 11일 경남 진해시 STX조선해양에서 최첨단 유도탄 고속함 4, 5번함인 황도현함(400t 오른쪽)과 서후원함(400t)의 진수식이 열리고 있다.
 
  “684호 침몰 위험은 없다”
 
  우리 해군 고속정의 차단 기동이 시작되던 오전 10시25분에 252편대 고속정 2척이 북한 경비정을 향해 북진하다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동쪽으로 함수를 돌리는 순간, 북한 경비정 684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향해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했다.
 
  같은 편대 참수리 358호를 먼저 지나가게 한 다음, 뒤이어 동쪽으로 함수를 돌리던 참수리 357호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앞서 간 참수리 358호가 응전을 못 하도록 해놓고 뒤를 따르던 참수리 357호에 전차포 등을 동원해 집중포격을 가했다. 매복작전에서 후미를 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앞서 가던 참수리 358호가 대응사격을 하기 위해 선수를 돌리는 사이에 북한 경비정은 4~5분간에 걸쳐 참수리 357호를 표적 삼아 집중포격을 가했던 것이다.
 
  북 경비정 388호는 684호 뒤쪽으로 빠져서 위치한 다음, 전투상황을 중계했다. 오전 10시25분 8전대사령부가 “불당소리(포성) 들리냐”고 하자, 388호가 10시30분 “포성소리 들린다”고 보고한다.
 
  8전대사령부는 388호 경비정에 10시50분 “684호와 같이 북상하라”고 지시했고, 아군도 당시 등산곶 경비정 684호가 화염과 연기를 자욱하게 피우며 경비정 388호에 예인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 직후인 10시56분, 2함대사령부는 ‘현장 전 전력 사격중지’를 지시하고, 11시가 되자 NLL 선상의 모든 함정에 전속력으로 남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1시5분, 순위도 전탐초소는 경비정 684호에 “8전대에서 표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통보한다. 북 경비정 684호가 참수리 357고속정 공격에 의해 기관 고장이 났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표류는 기관 고장으로 항해를 못 하는 상황을 뜻한다. 8전대사령부는 388호에 “684호는 사곶으로 입항시키고 대기하라”고 지시한다.
 
  사곶항은 북한 경비정이 출항한 모항(母港)으로 388호에 684호 예인을 맡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684호는 통신장비도 피탄당한 듯했다. 북한 경비정 2849호가 11시20분 “684호가 통신 결속이 되지 않는다”라고 8전대사령부에 보고하고 있다. 11시35분, 북 경비정 388호는 “684호, 침몰 위험은 없다”라고 8전대사령부에 최종 보고했다. 경비정 388호는 기동 불능인 경비정 684호를 예인해 북으로 돌아갔다.
 
  한철용 장군은 “북한의 대함 미사일 관련 전자파는 교전 동안은 물론, 교전 직후에도 탐지되지 않았다”며 “교전 후 약 4시간 만인 오후 3시경 전자파가 탐지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건 직후, 해군은 사격중지 명령을 하달한 이유로 북한 미사일 기지에서 전자파가 탐지돼 확전이 될까 봐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한 장군은 “결국 북한은 우리의 보복을 우려해 교전 4시간 만에 대함 미사일 전자파를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2 연평해전은 제한된 협조하에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 마치 자객 염장이 장보고를 살해하듯 공작 차원의 도발로 평가된다”고 했다.
 
 
  국방부, 6월 13일 ‘발포’ 등 도발정보 1차 묵살
 
2009년 6월 25일 제2 연평해전에서 순국한 고(故) 윤영하 소령의 모교인 인천 송도고에서 윤 소령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윤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씨가 아들의 흉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한 장군은 “북한의 결정적인 도발정보가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있었으나,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묵살해 해군에 하달하지 않았다”면서 “그 결과로 우리 해군은 북한의 도발의도를 전혀 모른 채 평상시와 같이 교전규칙대로 차단 기동에 나섰다가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6월 13일 대북 감시부대는 북한 해군의 8전대사령부와 북한 경비정 간의 교신 내용 중에 매우 중요한 도발정보를 감청했다. 우리 고속정을 목표로 ‘발포’라는 결정적 도발용어가 포함된 북한의 도발정보였다.
 
  이는 14자로 구성된 도발정보(SI 14자)로, 거기에는 당시 쏠 무기(해안포 또는 미사일)까지 언급돼 있었다고 한다. 1967년 1월 19일 동해에서 우리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했던 우리 해군 당포함이 북한의 해안포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승무원 39명이 전사한 대형 참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정보였다는 것이다. 해안포는 사거리가 24km 이상으로, 레이더 포착이 되지 않아 해상의 함정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다.
 
  한 장군은 “미군의 경우는 훈련 상황이 아니고 실제 상황하에서 한·미군을 목표로 ‘사격’, ‘발포’, ‘공격’, ‘기습’ 등 도발용어가 무선교신 중에 잡히면 수집과 동시에 ‘번개통신(Flash)’으로 국방성으로 보고한다”면서 “국방부는 그 무슨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비정하게 묵살해 버렸다”고 했다.
 
 
  국방부, ‘단순침범’으로 수정배포 지시
 
  당시 국방부는 북한 경비정의 의도적인 NLL 침범을 ‘단순침범’으로 평가해 언론에 발표했다. 그리고 북한 감시부대가 부대의견으로 관련 부대에 전파한 ‘의도적 침범’이란 평가를 국방부와 동일하게 ‘단순침범’으로 수정해 다시 전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 감시부대가 국방부의 지시를 받고 블랙북(Black Book·주요부대에 배포하는 북한첩보 관련 일일 보고서) 내용을 수정해 다시 전파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북한 감시부대가 관련 부대에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6월 13일 항공사진에 의해 실크웜 대함 미사일 발사대도 식별됐다. 한철용 장군은 “이는 보조 수단으로서 1차로 당시에 쏠 무기로 공격이 실패하면 2차 실크웜 미사일(사거리: 95km)로 때리려고 ‘후보계획까지 수립했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1차 도발 실패 시에 대비해 실크웜 미사일까지 등장했으면 심사숙고했어야 했는데, 국방부는 안일무사 일변도였다”고 했다.
 
  6월 14일 정보장군단 회의가 정보본부장실에서 열렸다. 회의 목적은 정보사령부와 북한 감시부대의 실무자 간 사소한 언쟁으로 약 40일간 정보사가 북한 감시부대로 인공위성 사진 등 항공사진을 전송하는 장치를 차단한 사건에 대한 그 조사 결과 보고회의였다.
 
  북한 감시부대장인 한 장군은 회의 초입에 6월 13일의 ‘발포’ 등 도발정보(SI 14자)의 심각성을 말하고, 또 항공사진으로 찍힌 실크웜 대함 미사일의 등장은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될 징후라고 강조했다. 한 장군은 “당시 권영재(權寧載) 정보본부장과 정보본부의 간부들은 당시 남북 간 평화교류와 햇볕정책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로 듣는 것 같았다”고 했다.
 
  국방부는 6월 20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은 북한어선 단속차 월선한 것으로서 단순침범”이라며 “서해 NLL은 평온하며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6월 13일 ‘발포’라는 도발용어와 쏠 무기까지 언급된 도발정보가 있었고, 항공사진으로 실크웜 대함 미사일이 찍힌 영상(사진)정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태연하게 ‘NLL 이상무’라고 기자회견 시 발표했던 것이다.
 
사거리 95km에 달하는 북한의 실크웜 미사일. 군은 사격중지 명령을 하달한 이유로 북한 미사일 기지에서 전자파가 탐지돼 확전이 될까 봐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고 했으나 실제로 북은 교전 4시간 만에 대함 미사일 전자파를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27일 ‘발포’ 등 결정적 도발정보 또 묵살
 
  북한 감시부대는 해전 이틀 전인 6월 27일, 결정적인 도발정보를 수집해 국방부에 또 보고한다. 8전대사령부에서 경비정에 ‘발포’를 1회 언급했고, 경비정은 8전대사령부에 ‘발포’라고 2회 언급하며 당시 우리 고속정과 대치상황을 보고한 것이다. 이는 8전대사령부가 결심만 하면 언제든지 공격하겠다는 도발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정보였다고 한다.
 
  위에 거론한 2건의 첩보는 수집기지의 시초보고로서, 수집기지에서 실시간으로 관련 부대와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어 북한 감시부대는 2건의 첩보를 한 건의 첩보인 ‘낱첩보 보고서’로 만들어 또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때 ‘발포’라는 도발어휘가 2회 언급됐다고 한다. 그리고 군단까지 배포되는 최종보고서인 북한 감시부대 블랙북 작성 시 ‘발포’라는 도발어휘는 2회 언급됐고, 이는 결정적인 도발정보(SI 15자)였다.
 
  따라서 국방부는 같은 내용의 도발정보를 3건의 정보보고로 ‘발포’라는 도발용어를 도합 무려 7회(수집기지의 시초보고: 3회, 낱첩보: 2회, 최종보고서 블랙북: 2회)나 받아보았기 때문에 북이 공격한다는 사실을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6월 13일 건처럼 도발정보를 의도적으로 묵살하고 예하부대에 하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기자는 북한 감시부대 한철용 장군을 만나 “‘발포’라는 도발용어만 가지고는 국민들이 도발의 심각성을 실감하기엔 좀 미흡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국방장관을 지낸 천용택(千容宅) 당시 민주당 의원은 김승광(金勝廣) 특조단장(예비역 육군중장)에게 “SI 내용이 별 것 아니다”면서 “그 내용을 공개하고 나면 허탈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장군은 다음과 같이 예를 들며 반박했다. 한 장군은 “조폭들이 일정 지역의 이권다툼에서 ‘갑’ 쪽의 조폭이 상대편 ‘을’ 쪽의 조폭을 대상으로 ‘처치 명령만 내리면 바로 처치하겠다’는 내용을 휴대폰으로 자기 두목에게 보고하는 것을 상대 ‘을’ 쪽 조폭이 엿들었다고 가정해 보자”면서 “그렇다면 ‘을’ 쪽 조폭과 그 두목이 엿들은 ‘처치’ 운운하는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드릴까요,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요?”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반문했다. 한 장군은 “그런데 이틀 후에 엿들은 통화 내용대로 조폭 간에 살인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고 했다.
 
  기자가 한 장군에게 “당연히 ‘처치’ 운운하는 통화내용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라고 하자, 그는 “그렇지요?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지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한 장군의 말 속에 SI의 실마리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처치’ 대신에 ‘발포’라는 단어로 교체해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라고 684경비정이 8전대사령부에 보고하였다는 뜻이네요?”
 
  한 장군에게 동의를 구하자, 그의 안색이 변했다. 너무 구체적으로 예를 든 것을 후회하는 눈치였다. 기자는 틈을 주지 않고 “제가 한 말이 맞지요?”라고 다그치자,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기자는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는 내용이 북 경비정이 8전대사령부에 보고한 생첩보(수집기지 시초보고) 내용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섰다.
 
  한 예비역 장성은 “결국 6월 27일의 도발징후는 삼척동자가 보아도 결정적인 도발정보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라며 “6월 13일부터 우리 측 경비정을 공격하려고 상부에 계속 허가를 구했던 그 경비정이 바로 1999년 해전 때 우리에게 얻어맞았던 배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대비를 하지 않은 군 지휘부는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해작사 보고서, ‘등산곶 경비정 강력한 사격의지 보였다’
 
2002년 4월 2일 국회국방위에에서 발언하는 김동신 당시 국방장관. 김 장관은 서해교전 직후 경질됐다.
  《월간조선》은 최근 아군 해군작전사령부가 작성한 ‘6월 27일 북 PCS 684호 NLL 침범 상황 결과’라는 당시 작전상황을 분석한 문건을 입수했다. 당시 해군은 북한 감시부대가 전달한 6월 27일자 도발정보(SI)에 대해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건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 함정과 신천중계소 간 통신설정은 차상급 부대, 서해함대사령부, 해군사령부의 현장상황 모니터링과 개입징후를 암시한다. 등산곶 경비정 PCS 684호가 남방에서 조업 중인 북한어선(허위 표적)에 대해 단속을 지시받고, NLL 남방 12NM까지 침범했다가 북상했다.
 
  적 경비정이 기동하는 남방해역에는 특이 접촉물은 없었고, 아측 고속정 편대가 적극적인 차단 기동을 했으나, 적정(敵艇)은 NLL을 2마일, 52분간 침범했다. 아측 고속정 편대가 차단 기동 중 양측 모두 전 포대가 상대를 향해 추적했다. 적 경비정이 지시점 기동·복귀 시는 12~13노트, NLL 남방 기동 시는 8노트 경제속력으로 기동했다.
 
  등산곶 경비정(684호)이 NLL 침범 시 아 고속정에 대한 사격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8전대사령부와 사격기도 관련 교신(SI 15자)을 했다. 적정 대응 중인 아 고속정 편대에 전 포대를 추적했다. 기동 전 철저한 사격준비 상태를 갖추고 왔다.
 
  등산곶 경비정에서 불상활동(미심쩍은 행동) 또는 사격요청 시 8전대는 4회에 걸쳐 적극 제지를 지시했다. 8전대 경비정 사격과 이동 관련 철저한 지휘통제를 했다. 경비정(684호)은 불상활동 또는 사격과 관련해 강한 집착을 보였다. 주변 지원세력 활동은 없었다. 8전대 등산곶 경비정 NLL 남하 기동 중 아 경비정과 초계함의 위치를 문의하는 등 아 함정의 대응능력을 확인했다.
 
  6월 11일, 6월 13일 NLL 침범 시에는 아측 대응태세를 확인한 것과 북한 8전대 세력의 긴급출동 태세 점검 위주로 기동했으나, 금번 침범 시에는 등산곶 경비정이 아 고속정에 의해 포위된 상황하에서도 불상활동, 사격의지를 강력 보인 점, 인근 지원세력의 활동은 없었으나, 신천중계소와의 교신을 설정한 점 등이 특이하다.>
 
 
  ‘보복사격 중지’로 북한에 잘못된 신호 보낸 셈
 
한나라당 서해도발 사건 조사특위 강창희 위원장(가운데)과 강창성 의원(왼쪽) 등이 2002년 7월 4일 해군 제2함대를 방문, 정병칠 함대사령관(오른쪽)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2함대사령관으로 제1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박정성(朴正聖) 제독은 “의문점은 북한 경비정 684호 단 1척이 우리의 해군 고속정 6척과 초계함 2척 등 총 8척과 대적한다는 것은 중과부적인 상황인데, 388호가 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뒤에서 한가하게 전투상황을 중계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우리 해군이 보복응징 사격, 특히 초계함에 의한 76mm 함포의 보복응징 사격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과 확신이 없는 한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교롭게도 76mm 함포 보복응징 사격이 사격 도중에 중지되고, 그 결과 다 잡았던 북한 경비정은 살아서 돌아갔다”고 했다.
 
  당시 적의 기습공격을 받자, 정병칠(鄭炳七) 2함대사령관(2009년 폐암으로 사망)은 교전규칙에 의거, 보복응징 사격에 나섰다. 초계함의 76mm 함포 50여 발을 때려서 적 경비정을 반 정도 침몰시켰다. 이제 50여 발만 더 때리면 적 경비정을 완전히 침몰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상급부대에서 사격중지 지시가 내려와 사격이 중지된 것이다.
 
  박정성 제독은 “당시 중간에 사격중지 명령만 안 내려왔더라면 우리 해군은 제1 연평해전 때처럼 대승을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면서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북한은 제1 연평해전 대패 때처럼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더 이상 대남 도발을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해전 후 사격중지 명령을 내린 상급부대가 어디인지를 놓고 합참과 해군작전사령부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한 예비역 장성은 “당시 해군은 정병칠 2함대사령관, 문정일 해군작전사령관, 이상희(李相憙) 합참작전본부장, 이남신(李南信) 합참의장으로 명령계선이 형성돼 있었다”면서 “해군 작전사령관은 당시 교전을 중지시킬 권한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해전은 합참 벙커에서 단계별로 위기대응반이 가동돼 합참 작전본부장(이상희 중장)의 지휘로 작전부장, 작전처장 등이 참석했을 것”이라면서 “사격중지 명령의 당시 최종 책임자는 이상희 장군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이상희 전 국방장관의 반론을 듣기 위해 마감 직전인 6월 15일과 16일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정남도 고미요지(五味洋治) 《도쿄신문》 편집위원이 펴낸 책 《아버지 김정일과 나》에서 “한국의 부적절한 대응이 북조선의 공격을 초래한 면이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해전 후에 보복사격 중지 지시는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정성 제독은 “이것이 결국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게 된다”면서 “이런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급기야는 백주에 연평도까지 포격한 것”이라고 했다. 박 제독은 “‘확전방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 사격중지를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제1 연평해전 때는 청와대의 ‘확전방지’ 지시하에서도 보복응징 사격을 강력하고 철저하게 실시해 적 함정 1척을 침몰시키고 3척을 대파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확전으로 번지지 않았다”면서 “공군 전투기가 가담하지 않는 한 함정 간의 전투는 확전으로 번지지 않는다”고 했다.
 
 
  연합사 한국 측, 對美보안으로 미측과 도발정보 공유하지 않아
 
이상희 합참의장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2005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내 합참 회의실에서 대 화력전 지휘·통제 임무 전환을 위한 서명식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제2 연평해전 당시 이상희 전 장관은 합참작전본부장이었다.
  해전이 종료되자 국방부는 “제2 연평해전은 ‘우발적’이고 경비정의 ‘단독행위’”라고 주장했다. 정부도 미국과 일본에 ‘우발적’이라고 내비치자,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북한의 도발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언급했고, 정부는 움찔했다.
 
  7월 5일, 리언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은 남재준(南在俊) 연합사부사령관 등을 대동하고 국방장관을 예방해 제2 연평해전의 성격에 대해 논의했다. 이는 일정에도 없는 긴급 예방이었다. 이에 앞서 하루 전, 한미정보장군단 회의를 국방부에서 개최해 해전의 성격을 토의했으나, 미측과 북한 감시부대의 주장과 달리 국방부 정보본부가 ‘우발적’ 또는 ‘경비정 단독행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자 연합사령관이 직접 나섰던 것이다.
 
  연합사령관이 북한이 도발했다는 교신 내용을 증거로 제시하자,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은 결국 7월 5일 공식적으로 제2 연평해전은 ‘계획적’이며 ‘8전대까지 개입’한 도발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연합사 한국군 측은 북한 감시부대로부터 두 번에 걸쳐 결정적인 북한의 도발정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미보안으로 미측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6월 13일 도발정보(SI 14자)는 아예 연합사 블랙북에 수록돼 있지도 않았다.
 
  연합사에서는 주 1회 연합사령관에게 북한 군사 활동에 대한 정보 브리핑(CINC 브리핑)을 한다. 제2 연평해전 기간 중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측은 6월 13일과 6월 27일 북한 도발정보를 한 번도 브리핑 의제로 채택하지 않았고, 연합사령관과 토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철용 장군은 “남재준 부사령관은 ‘6월 27일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징후와 증거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면서 “6월 27일자 연합사 한국 측의 블랙북에는 5679부대의 보고내용이 그대로 포함됐다”고 했다. 한 장군은 또 “서해상 NLL은 한미연합사령부가 ‘우발계획’을 갖고 있는 지역”이라며 “주한미군 측에 블랙북을 정상적으로 전달했다면 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은 “평시 작전권은 합참이 갖고 있으며, 북한 감시부대에서 수집한 정보는 연합사를 거쳐 국방부에 보고되는 것이 아니라 합참을 거쳐 국방부로 보고된다”면서 “당시 연합사에 온 블랙북에는 SI가 포함되지 않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또 “평시 연합사부사령관은 연합사령관의 부하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군의 선임장교로서 연합사령관과 대등한 관계이고 동시에 보고받는 시스템이며, 본인이 연합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연합사의 업무계통과 절차를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다.
 
  권영재 본부장의 뒤를 이어 국방정보본부장이 된 김충배(金忠培) 전 육사교장은 “2002년 10월 정보본부장으로 부임해 보니, 해전 당시 6월 13일 NLL을 침범한 북한의 도발가능성 특이정보(SI)가 모두 사실이었다”면서 “미군이 한국정보를 불신하는 데는 제2 연평해전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 한미연합사 미군 측은 북한 군사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데 반해, 국방부는 ‘북한군이 햇볕정책에 호응해 군사훈련을 줄이고 있다’며 미군을 설득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2002년 6월 29일 북한 군부와 北 경비정 간 교신 내용

 
  ※오전 6시30분= 아군 고속정 3개 편대 6척, 조업 중이던 우리 어선 총 56척의 어로 보호를 위해 지원 출항.
 
  오전 9시28분= “684호 등산곶 동남 4NM 구역 차지할 것”이라고 지시(北경비정, 8전대사령부, 신천중계소 간 교신내용)
  오전 9시31분= “388호 등산곶 동남 6NM 구역 차지할 것”이라고 지시(北경비정, 8전대사령부, 신천중계소 간 교신내용)
  ☞북한 경비정의 기동지시 구역이 NLL 이남지역이므로, 이것부터 의도적 도발을 내포하고 있다.

 
  ※오전 9시37분= 북한 육도 경비정 388호(155t) 20노트 남하 기동 시작. 북한 어선 육도 20척(NLL 북방 4마일), 등산곶 10척(NLL 북방 3마일) 조업 중.
 
  ※오전 9시46분= 북한 등산곶 경비정 684호(215t), 388호 위치에서 서쪽으로 약 7마일의 간격을 두고 17노트 속도로 남하 기동 시작. 아군 고속정 편대 분산 목적. 2함대사 대북 경계강화 지시, 고속정 편대 조업어선 통제. 대응태세 유지 철저 지시.
 
  ※오전 9시54분= 북한 경비정 육도 388호, NLL 침범. 아군 해군함대 위기조치반 소집. 아군 고속정 253편대(참수리 328, 369호) 대응 기동 시작. 양측 고속정 간 거리 6.9km.
 
  오전 10시= “고속정 2척(남측)이 2NM까지 접근했다”(北경비정 388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북한 경비정 684호와 388호 두 척이 7NM 떨어져 동시에 남하했다. 684호와 388호는 애초부터 임무가 달랐다. 684호는 교전을 담당하고 388호는 남측 고속정 2척을 분산시킨 다음, 뒤로 빠져 우리 측 사거리 밖에서 교전을 중계한 것이다.

 
  ※오전 10시1분= 북한 등산곶 684호 NLL 침범. 아군 고속정 232편대(참수리 357, 358호) 대응 기동 시작. 양측 간 거리 12km.
 
  ※오전 10시14분= 아군 253편대 육도 경비정에 접근 차단 기동(간격 914m). 육도 경비정 388호 침로 변경 북상.
 
  ※오전 10시15분= 2함대사령부, 232편대에 등산곶 경비정과 2.7km 거리에서 차단 기동 지시.
 
  오전 10시15분= “고속정(참수리 357호)이 3NM까지 접근했다”(北경비정 684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오전 10시20분= “고속정 두 척이 대기동하므로 혼란스럽다”(北경비정 388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교전을 중계하려는 388호가 자신이 보호받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 기동하겠다”고 보고한 것이다. 즉 684호가 참수리호를 공격해 교전이 벌어지면 자신이 위험하니까 교전 중계를 위해 안전한 지역으로 기동하겠다는 뜻이다.

 
  ※오전 10시23분= 232편대, 차단거리 914m 되도록 기동 시작.
 
  ※오전 10시25분= 등산곶 684호, 참수리 358호 차단 기동 통과 후 뒤따르던 357호에 85mm포 선제 사격. 357호, 358호 즉각 대응 사격. 357호 40mm 6발과 장전된 20mm 탄약 대부분 발사 추정. 358호 40mm 38발, 20mm 1050발 발사. 북 경비정 화염, 속력 감소. 기능마비 추정.
 
  오전 10시25분= “불당소리(포성) 들리냐”(8전대사령부 → 388호에 지시)
  ☞불당소리는 북한이 포성(砲聲)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은어다.

 
  ※오전 10시26분= PCC초계함 253/256편대에 고속정 232편대 지원 지시.
 
  ※오전 10시29분= 아군 해안포 긴급 전투배치.
 
  ※오전 10시30분= 공군전투기(미사일 장착) 긴급출격 대기 요청. 아군 256편대(327, 365호) 격파사격 개시. 최초 사거리 3.8km. 327호, 40mm 40발 20mm 600발 사격. 365호, 40mm 34발 20mm 440발 사격.
 
  오전 10시30분= “포성소리 들린다”(北경비정 388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경비정 388호가 우리 고속정 편대 2척을 분산 유도한 후에 해상전투에 가담하지 않고 교전 중인 경비정 684호 후방 원거리에 위치해 전투상황을 무선으로 생중계했다.

 
  ※오전 10시33분= 253편대(328, 369호) 격파사격 개시. 최초 사거리 3.6km. 328호, 40mm 65발 20mm 238발 사격. 369호, 40mm 70발 20mm 800발 사격.
 
  오전 10시40분경= “사격을 했으니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8전대에) 전해달라”(신천중계소 → 8전대사령부에 통보)
  ☞해군사령부와 서해함대사령부가 선제공격 보고를 8전대사령부로부터 받고 직접 신천중계소를 통해 교전한 684호에 “이탈해서 올라오라”고 통신 결속을 시도했으나, 교신이 불가능하자 8전대사령부에 684호와 통신해서 현장을 빠져나오라는 지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전 10시43분= 제천함 전방 이동, 격파사격 개시. 최초 사거리 10km. 76mm 32발 40mm 184발 사격.
 
  ※오전 10시46분= 253편대장, 아군 전사자 5명 보고.
 
  ※오전 10시47분= 진해함 전방 이동 격파사격 개시. 최초 사거리 13.5km. 76mm 21발 발사, 6~7발 명중 추정.
 
  오전 10시50분= “684호와 같이 북상하라”(8전대사령부 → 경비정 388호에 지시)
 
  ※오전 10시51분= 등산곶 경비정 684호 NLL 이탈 북상. 화염·연기 발생 상태에서 육도 경비정 388호가 예인.
 
  ※오전 10시56분= 2함대사령부, 우리 측 현장 전 전력 사격중지 지시. 31분간의 교전 상황 종료. 북한 경비정 NLL 북방 0.5~1마일 지점 위치.
 
  ※오전 11시= 우리 측 해군 2함대사령부, 함정 전속력 남하 조치 지시.
 
  오전 11시5분= “8전대에서 표류하라는 지시다”(순위도 전탐초소 → 경비정 684호에 지시)
  ☞북한 경비정 684호가 참수리 357 고속정 공격에 의해 기관 고장이 났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표류는 기관 고장으로 항해를 못 하는 상황을 뜻한다.
 
  오전 11시15분= “684호는 사곶으로 입항시키고 대기하라”(8전대사령부 → 경비정 388호에 지시)
  ☞사곶항은 북한 경비정이 출항한 모항으로 388호에 684호 예인을 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전 11시20분= “684호가 통신 결속이 되지 않는다”(北경비정 2849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오전 11시25분= 피해 함정 인원 확인 결과 보고(전사 4명, 부상 19명, 실종 1명).
 
  ※오전 11시25분= 제천함, 북한 스틱스 함대함 미사일 위협전자파가 탐지되었다며 채프(레이더 전자파 교란용 금속 은박편) 발사.
 
  오전 11시35분= “684호 침몰 위험은 없다”(北경비정 388호 → 8전대사령부에 보고)
  ☞경비정 388호는 기동불능인 경비정 684호를 예인해 북상했다.

 
  ※오전 10시33분~11시59분= 참수리 358호, 357호 예인작업 착수. 13~15노트 속도로 357호 1.8km 예인. 교전지역으로부터 안전거리 이동 후 전사상자 확인, 구조. 선체 손상 확인. 소화·방수 실시. 358호, 전사상자 연평도로 후송 시작. 328호가 피격 357호 예인 중 심한 침수로 예인 포기. 피격 357호 조타장 한상국 중사와 함께 침몰. 8월 21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북방한계선 남쪽 5마일 해상에서 참수리 357호 침몰 53일 만에 인양.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5&nNewsNumb=20150617526&nidx=17527&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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