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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행사 고맙지만…" 농사일에 열중::)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의 한 좁은 도로에서 훈련중이던 미군 궤도차량이 길가던 중학교 2학년 신효순·심미선양을 덮쳐 그 자리에서 숨지게한 지 2년이 지났다. 효순이 미선이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후 미군 범죄 근절,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12일 열리는 효순이 미선이 2주기 추모 촛불집회를 앞두고 두 여중생들의 고향 마을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8일 효촌리는 지난봄 심은 모가 성큼 자라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논두렁 풀베기, 피뽑기, 제초제 뿌리기 등 크고 작은 손질은 해도 해도 끝이 안보이지만 마음만은 이미 풍년이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미선이 아버지 심수보(50)씨, 효순이 아버지 신현수(50)씨에게는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잘 자라주던 딸들의 어이없는참사와 사고 수습, 미군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노력들, 평생 처음 쫓아다녀보는 시위 현장. 전국민이 월드컵에 매달려 있을 때 딸들을 빼앗긴 가족들의 상심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심씨 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제는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드네. 시간이 간다고 해서 내가 걔를 잊을 수 있겠어? 자식은 마음에묻는다잖아?”심씨는 “12일에 그런 행사가 열리니 고맙지만 가족들은 그냥 조용히 집에서 보내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고 말했다. 마 루에 걸린 사진 속에서 미선이는 웃고 있다. 함께 있던 신씨도 “사실, 다른 뜻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계 속 복잡하다”며 “일도 바쁘고…”라고 말했다.

이제는 딸들의 밝은 모습만 기억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것일까.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어린 딸들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마침 인근 부대에서 위문차 미선이네를 찾아왔다.

소주·맥주캔 박스 위에 ‘××부대 위문품’이라고 적힌 문구가 무심하다. 간혹 생각났다는듯이 찾아와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기자들의 방문도 마음을 쓰라리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벌써 2년이다. 그동안 농삿일을 제대로 할 정신도 시간도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마음잡고 논밭을 가꿀 작정이다. 땅은 거 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신경쓰지 못한만큼 수확은 형편없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추밭을 돌보던 두 아버지는 묵묵 히 말뚝을 박다 생각났다는 듯이 한두마디씩 주고 받았다. “고 거 했다고 벌써 땀이 다 나네” “집에 있으면 더 더워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뭐. 올해는 풍년이 들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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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양의 어머니 이옥자(51) 씨에게 6년 전 사고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집 앞에서 인터뷰를 청하자 굳은 표정으로 “할 말 없다”던 이씨. 거듭된 설득 끝에 기자와 마주한 그는 “산 사람은 살게 돼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굵은 눈물을 떨궜다. “난 아직도 추모비에 혼자 못 가요. 거기 지나다닐 때는 그쪽으로 고개도 못 돌리겠어. 얼마전에는 효순이네랑 함께 추모비 청소하러 갔다왔지요. 그렇게 같이 갈 때나 가끔씩 들러보는 거지….”

그런 이씨에게 요즘 서울광장의 밤을 하얗게 수놓는 촛불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미선.효순 양의 죽음을 자양분으로 하나둘 밝혀졌던 촛불. 6년 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10대는 20대가 되어 다시 촛불을 들고 모였다. 이씨는 “우리 아이들 가는 길 지켜줬던 촛불, 고마웠다”고 말하면서도 시위에 폭력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우리 아이들 기억해 주는 많은 분께는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요즘 문화제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어린 학생들도 참여하는데…. 그런 것 생각하면 무서워요.”

이씨는 미선.효순 양 추모 촛불문화제에 정치구호가 등장하는 등 극단으로 기우는 것에 대해서도 반감을 보였다. “우리 아이들 죽인 그들이 당연히 밉죠. 어떻게 안 밉겠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죽음을 곧장 반미구호로 연결하는 것은 원치 않아요.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것은 거부감 드네요.” 이씨는 정치구호나 폭력으로 촛불의 원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이씨는 오는 13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미선.효순 양 사망 6주기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가족끼리 아이를 기억하면서 조용히 기일을 보낼 거예요. 절에 다녀오든지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고 싶지 않아요.”

이씨에게는 딸의 죽음이 6년이 지난 현재도 입에 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운, 추모비 곁을 혼자 지나기도 힘든 상처일 뿐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 것이란 말이 있지요. 자꾸 말할수록 아프고….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질 것 같지가 않네요.”

끝내 고개를 떨구는 이씨의 눈물에는 6년 전의 아픔이 조금도 덜어지지 않은 채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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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05/14 00: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5/14 00: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전위대 2014/05/14 13:32 # 답글

    미군들이 꾸준히 헌화하고 가는데 누군가가 미군들이 놓은 꽃을 짓밟고 간다 하더이다.
  • NET진보 2014/05/14 13:34 #

    ㄲㄲㄲㄲ 그들식 민주주의! 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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