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서울 공무원 간첩 사건/ 유우성 지인 탈북자 증언

    

출처는 다음과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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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알고 지낸 화교 유우성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서울 공무원 간첩 사건의 주인공 유우성(북한에서 본명 유가강)은 누구인가.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당국이 유가강의 북한 행적을 알고 올바른 조사를 하기 바래서이다. 나의 글이 유가강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있어 그를 놓고 공방을 벌리는 정치세력이나 법조인들에게 불리 또는 유리하게 되겠는지는 법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다만 유가강의 사건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조장하고 어느 특정의 정치 장사꾼들이 불순한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나 구실로 이용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가강은 내가 탈북 하기 전 살던 북한 국경도시 회령시에서 유별난 인연으로 알게 된 화교(북한에서 살면서 중국 국적을 가진 한족)출신의 2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말이 별로 없고 사람들에게 곁을 잘 주지 않던 유가강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는 그런 인물로 등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유가강이 '간첩이다. 아니다.'를 떠나 북한에서 내가 그를 알게 되어 지낸 3년 남짓한 기간 보고, 듣고, 느낀 유가강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리는 것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그의 행적을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 몇 년째 끌어오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 사건을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유가강 본인에게도 좋고 사법기관과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저의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가 북한 보위부의 임무를 받고 탈북자로 가장하여 남파 된 간첩인지 아닌지를 알아서 판단 하시기 바란다. 유가강의 집은 회령시 성천동 '남문여관' 후문에서 150m가량 떨어져 있는 거리에 높은 담장으로 들러 싸인 단층 독집(방 크기 :40평 정도 / 마당 50평 정도)이다. 그의 집은 회령시에서 돈과 재산이 5번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생활이 유족한 중국 화교 집이었다. 화교라고 하면 돈과 재산이 많다는 것은 북한에서 살아 본 화교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들인 신의주, 혜산, 무산, 회령, 온성 등지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은 돈과 재산이 많기로 북한에서는 유명하다. 그 이유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기 부터 시작 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갈 때 북한 화교들은 중국 국적을 이용하여 중국으로 드나들면서 식량을 비롯한 식료품, 생활필수품, 가정용품, 전자기기들을 화물차로 가득 실어 북한으로 가져다 팔곤 했었다.

 

1. 북한 회령시 유가강이 살고 있던 집  2. 남문여관  3. 회령시당  4. 김정일의 생모 동상  5. 회령시 보위부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고장의 장사꾼들과 타지방(청진, 김책, 단천, 함흥 등) 앞쪽지방의 대도시들에서 온 장사꾼들에게 상품들을 시장 가격보다 조금 싸게 다량으로 넘겨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폭리를 얻곤 했었다. 유가강의 집은 회령에서 주로 TV, 녹화기등 가전제품을 중국에서 많이 가져다 팔곤 한 것으로 기억 된다. 유가강을 내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 서이다. 그를 친구부터 소개 받기 전에도 나는 한 달에 1~2번 꼴로 그의 집에 찾아가 중국에서 가져온 TV와 녹화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을 구입해 청진에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주거나 그들이 회령으로 들어오면 유가강의 집에 데려가 소개해 주곤 했다. 2000년대 초기 나는 회령에서 중국과 무역업을 시작 했었다.

 

유가강을 가깝게 알게 된 동기는 핸드폰이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과 무역업을 한다는 것은 중국의 상품 가격을 알고 물자를 내오는 날자와 시간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핸드폰이 없으면 무역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가강의 집은 중국에 친척들이 많아 중국에서 장사 물자를 내오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은 회령시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 한 사람인박원철(가명)의 아내 최순옥(가명)이 때문이었다. 2001년봄이라고 생각된다. 하루는 박원철이 나에게 자신의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령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고있는 중국화교가 중국으로 전화 할 일이 있어 그러니 핸드폰을 사용하게 하면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고 했다. 북한에서 핸드폰 전화비는 중국에서 넣어 주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그 당시 국경 지역에서만 중국과 핸드폰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기지국도 중국에 있었다. 무역을 갓시작한 나로서는 전화비를 자주 넣어 달라고 중국에 부탁하기 몹시 부담스러운 때여서 전화비를 넣어 주겠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 당시 북한에서 핸드폰을 남에게 쓰게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한 것은 핸드폰 사용에 대한 북한 사법당국의 금지령이 내렸었기 때문이다. 북한 보위부에서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사용하는 것은 반국가 행위와 같이 취급했다. 핸드폰으로 국가비밀을 넘기거나 적대행위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주었다가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는 것이북한 보위부에 알려지는 날이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 엄청난 곤욕을 치르어야 하는 일이다. 보위부 사람들은 핸드폰 소유자를 체포하여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이유, 구입경로, 핸드폰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

 

특히 한국과 전화한 일이 없는가를 별의 별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 내곤 했다. 핸드폰 주인뿐 아니라 핸드폰을 판사람, 한번이고 두번이고 사용한 사람이라면 죽기를 각오해야 했다. 국경지역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거나 공개 총살을 당한 사람들의 80% 이상이 핸드폰 사용자들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잘 알 수 있다. 핸드폰으로 한국과 통화를 하다 북한 보위부에 잘못 걸려 반역행위로 낙인 찍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가든가 아니면 공개처형을 당해야 한다. 친구 박원철의 아내 최순옥(회령시 동 담당 병원의사)은 유가강과 회령시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유가강은 청진 의학대학에 통신(일하면서 자체로 대학 공부를 하는 제도)을보며 회령시 병원에 준의사(의사가 되기 전 직책)로 근무하고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누구도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때어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박원철이나 그의 아내 최순옥이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이유는 그의집 아파트에서 중국과 전화통화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국과 전화를 할 일이 있으면 박원철의 집에서 전화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변의 위험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일을 박원철네 집에서 허물없이 할 수 있은 것은 박원철과 그의 아내 최순옥과 우리 집 사이 관계가 인간적으로 가까워서이다. 박원철의 아내 최순옥은 나의 아내와 어릴 때 부터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었다. 최순옥은 유가강이 화교인 까닭에 생활적으로 신세를 많이 지고 또 그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그들 사이도 어지간히 가까운 모양이었다. 최순옥이 나에게 유가강이 중국 친척집에 전화 할 일이 있는데 핸드폰을 한번 쓰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을 사용하다 보위부에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라고 하자 최순옥은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한 것은 유가강이 회령시 보위부 사람들을 잘 알기 때문에 단속을 당해도 문제가없다는 것이었다. 최순옥의 말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이유는 보위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시보위부에서 필요한 물건이라든가, 생활필수품은 화교들을 통해 많이얻고 있기 때문에 화교들과 보위부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깝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화교들은 중국에서 필요한 물건과 식량을 트럭으로 가져와 북한 장사꾼들에게 팔아야 살수 가 있다. 북한에서는 화교들이 보위부의 요구나 말을 듣지 않으면 중국에 오갈 수 없기 때문에 싫든 좋든 북한 보위부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여권을 보위부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한번은 유가강과 함께 최순옥의 집에서 전화를 하고나서 소주를 한잔 함께 한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유가강에게 어떻게 중국에 자주 합법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가 물었더니 웃으며 회령시 보위부의 요구를 들어주면 쉽게 중국여권을 낼수 있기 때문에 자주 중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다. 회령시 성천동 담당 보위부 지도원은 유가강의 집에 제집 드나들 듯이 했고 회령시 보위부에서도 유가강의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나로서는 최순옥이 유가강의 말이 맞다고 생각 했었다. 친구 박원철과 아내 최순옥이장담하고 또 그들과 가까운 사이라 내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들어주기로 했다. 전화비를넣기 힘든 때어서 유가강이 중국 전화를 몇번 하고 위안화 100원을 전화비로 넣는 것도 괜찮은 장사였다. 전화비 위안화 100원을 넣으며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때어서 3개월 정도를 쓰곤 했다.

 

한마디로 핸드폰을 함께 사용하는 정도이면 웬만히 가깝거나 사람 파악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200212월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회령천 가까이 있는 회령인민위원회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아파트 집에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다 북한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평양 국가보위부에 적을 두고 국경지역에 주재하고 있으면서 중국과 한국으로 오가는핸드폰 전파를 탐지하거나 추적하여 범인을 잡아내는 임무를 맞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회령에도 그런 사람들이 전파탐지기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중국과 핸드폰 통화를 하면 장소를 추적하여 체포해내고 있었다. 그들도 회령시 어느 장소가 핸드폰 통화가 되고 안되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전파 탐지국 요원들이 차를 타고 대기하고 있다가 핸드폰 전파가 들어오면 차로 이동하여 급습하기 때문에 핸드폰 통화를 5분 이상 하면 안되었다.그날 따라 중국과 통화가 조금 길어져 10가량 했는데 그만 국가보위부 전파 탐지국 사람들이 내가 전화를 하고 있던 집 문을 부스고 들어오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 일로 1주일 가량 회령시 보위부에 끌려가조사를 받았다. 중국에서 물자를 내오는 일로 핸드폰을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 나의 직업이 무역기관 책임자였고 평양 본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어 다행히 벌금40만원 물고 삼성 핸드폰을 빼앗기고 풀려났었다. 그때 유가강이 전화했던 전화번호가 그핸드폰에 남아있어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핸드폰에 찍혀 있는 전화번호의 출처를 대라고 곤욕을 치르며 유가강이 중국에 전화 했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유가강이 보위부에 끌려가 엄청난 처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일 없는 것을 보고 확실히 보위부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다른 일반 사람들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유가강과 나는 핸드폰으로 중국과 전화를 하면서 잘 아는 사이가되었다. 2003년 봄이라고 생각된다. 한번은 내가 중국에서나오는 상품들의 가격을 유가강의 친척들에게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중국 가격을 알아야 북한에가지고 나오면 얼마나 마진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가강에게 부탁한지 2주정도 지나도 그가 나타나질 않아 그의 집에 가보니 그의 부모들이 하는 말이 당분간 집에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여러 번 찾아가 유가강의 부모님들에게 아들과 내가 약속한 일을 말하고 유가강이 어디 갔는지 말해 줄 수 없는가 고 따졌다. 그때야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유가강이 중국으로 영원히 살려고 들어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물건 가격을 알아 봐주겠다고 약속 해놓고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고 갈 것이지…' 하는 생각에서 였다. 그렇게 유가강이 다시는 볼수 없으리라 했던 나는 뜻밖에 한국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내가 북한을 떠나지 않으면안될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나의 친구가 중국에 갔다 오겠다고 하여 보내준 것이 그가 한국으로 도주를하는 바람에 국가 보위부에 발각 되면 수용소에 끌려갈 판이었다. 북한에서는 한국 행을 도와준 사람은무조건 공개처형 아니면 수용소에 넣어버리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앞뒤를 생각 할 겨룰이 없이 북한을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

 

200610월 하나원을 나와 정부로부터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임대 아파트에 배정받아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해 11월 중순 경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오후 5시경 밖에서 일을 보고 4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를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던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4년전 북한에서 중국으로 갔다고 하던 유가강이 나의 앞을 지나 가는 것이었다.사라져 가는 유가강의 뒤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내가 잘못 보지 않았나.' 보고 또 보아도 분명이 내가 알던 북한 회령의 유가강 이었다. 며칠동안은 서나 앉으나 그의 생각이었다. 내가 잘 못 보지 않았다면 중국으로 갔다는 화교인 유가강이 어떻게한국에 와 있을까?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돈을 벌려 많이 온다더니 유가강이도 돈을 벌려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유가강의 집은 북한 회령에서 잘 살고 돈이 많기로 소문난 집인데 한국에 돈 벌려 왔다는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다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이런 생각 하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 후 다시 유가강을 보게 되었다. 단지 아파트 보도 블록에서 만났을 때 나는 유가강에게 북한 회령에서 오지 않았는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는 이렇다 할 아무런 대꾸 한마디 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를 지나쳐 보내고 나서 나는 '회령의 유가강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핸드폰 사용을 함께한 내가 유가강을 몰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유가강이 나를 피할까. 수수께끼 같은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던 나는 유가강이 어디서 사는지 알아 볼 생각을 해보았다. 후에도 그와 한 아파트에서 사는 까닭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유가강이 올라가고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복도식으로 되어 있어 올려다 보면 사람이 집을 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마자 그가 어디로 가는지 밖에서 지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가강이 내가 살던 집의 위층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한달 정도 지나 나는 우편 배달을 해볼 생각으로 9인승 스타렉스 승합차를 할부로 구입했다. 어느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유가강이 웬 여성과 대우자동차인 마티즈 같은 디자인의 빨강색 경차를 타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후인 2006년12월 관계 기관에 유가강의 행적에 대해 알리고 추적해 보라고 이야기 했었다. 20085월 나는 마포구 X X 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유가강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탈북자로 위장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언론에 보도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최근에 북한에서 유가강을 알게 되어 지나온 과정을 짧게 돌이켜 보았다.북한에서 부러운 것 없이 살던 유가강이 왜 중국으로 건너 갔으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탈북자 행세를 해가며 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가강이 탈북민들과 단체들의 명단을 북한 보위부에 넘긴 것이 사실인지그것이사실이라면 그는 마땅이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가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그가 증언한 이야기를 들어보며 여러가지 개인적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유가강을 처음 한국에서 만났을 때 관계기관이 나와 함께 '북한 쪽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의 정체를 알아 보았으면 이번과 같은 황당한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해보았다.

 

나는 유가강의 사건을 놓고 그를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론을 악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수백만의 북한 동포들이 독재자의 칼에 맞아 쓰러져가도 입 한번 뻥긋 안 하고 외면하던 사람들이 수사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살판났다며 왜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유가강이 북한 보위부 임무를 받은 간첩인가 아닌가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유가강 사건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끌고가 자신들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과 이해관계에 이용하려는 일부 정치 장사꾼들과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을 해체시키고 무력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섬찟한 생각이 들곤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 지령을 받지 않고서야 백주에 한나라의 안보를 총괄하는 기관을 뒤집어 놓으려고 난리를 부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사법기관의 수사가 올바른 방향에서 진행되어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 어느 특정 기관이나 사람들을 흠집내고 파면시키려는 정치적인 목적에 악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부와 국민들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이용하여 어부지리를 얻고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어 보려는 그 어떤 행위도 단호히 배격하고 유가강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여 법과원칙에 따라 처리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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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강(유오성)과 동생은 중국국적자로써 불법으로 밀입북 한적이 있습니다.
그로인해서  북한 이탈 주민 및 여권 관련법 에 유죄를 받았습니다.


유우성씨는 1980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화교로 이미 4대 전에 북한에 정착한 집안에서 자랐다. 2001년 함경북도 경성에 있는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업을 마친 후 회령에서 준의사(의사 보조역)로 근무했다.

노임과 배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북한 사회의 경제난 때문이다. 살길이 막막했다. 호구지책을 찾아야 했다. 유씨는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밀수꾼을 통해 북한 물자를 거래하는 밀무역에 나섰다. 남한 거주 탈북자들과 북한 거주 가족 간에 통화 및 송금을 주선하는 일까지 했다. 의사와 장사꾼 사이에서 사명감이 흔들렸다. 북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남한을 동경했다.

결국 2004년 3월 북한을 떠났다. 중국 여권으로 중국·라오스·태국을 거쳐 남한에 들어왔다. 유씨는 자신이 중국 국적을 지닌 화교라는 사실을 숨겼다. 자신을 북한 이탈 주민 ‘유광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대상자가 됐다. 한국 국적을 얻었고, 북한 이탈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나원 등에서 각종 교육을 마쳤다. 2004년 3월 대전에 처음 정착했다. 복권방 종업원, 건설 노동자, 보따리상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2007년 서울 소재의 한 대학 3학년에 편입했다. 대학 생활 동안 학내·외 탈북자 관련 동아리·단체 등에서 활동했다. 2010년에는 이름을 유우성으로 바꿨다. 2011년 대학 졸업 후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그렇게 ‘북한 이탈 주민 유광일’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으로서의 새 삶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유우성씨는 전격 구속된다.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의해서다. 유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 명단 등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것이 주요 혐의였다. 이어 검찰은 유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북한 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여권법 위반 등 8개 죄목으로 기소했다. ‘탈북자 출신 공무원’이던 유씨가 하루아침에 ‘간첩’이 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왜 유씨가 간첩이라고 판단했을까.

시간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씨가 북한에 들어갔던 때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중국 옌지(延吉)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 통행증을 발급받아 북한 회령에 다녀왔다. 여기까지는 유우성씨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어머니 장례를 위해 입북했던 것은 2009년 국정원에서 이미 조사를 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

재판부는 유가려씨가 대체로 일관된 진술을 하다가 법정에서 이를 전면 번복한 점을 참고하되, 객관적 증거와 유씨 진술이 상당 부분 어긋나는 점들을 참작했다. 이로써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관련 혐의를 기소한 핵심 증거였던 유가려씨의 증거능력이 깨졌다. 1심 선고에서 유우성씨는 북한 이탈 주민 및 여권 관련법 등에만 유죄를 받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그를 간첩으로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관련 혐의는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http://m.sisapress.com/articleView.html?idxno=62106&menu=3


세계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유씨가 2004년 4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을 당시 자신은 탈북자라고 주장했다. 이름은 ‘유광일’이며 1980년 중국 국경과 인접한 함북 회령시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유씨의 본명은 ‘유가강’이였고 중국 국적의 화교임이 드러났다. 거짓말을 한 것이다.
유씨는 재북 화교라는 신분 덕에 북한과 중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갔고, 위조 의혹이 일고 있는 문서들에 유가강이라는 본명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유가강과 유광일이라는 이름을 상황에 맞게 번갈아 사용한 유씨는 우리 정부와 중국 정부를 동시에 속이는 이중생활을 한 것이다.


유씨는 2009년 공안당국의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당시에는 간첩 행위가 아닌 중국 국적임을 의심받았다. 탈북자 신분으로 북한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이 공안당국의 의심을 산 것이다.


이때 유씨는 북한 공민권자임을 증명하겠다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는 제목의 북한 신분증을 가져와서 공안당국에 제출까지 했다. 여기에 바로 유씨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 ‘유광일’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나 1심 재판과정에서 이 신분증은 위조된 것임이 탄로 났다. 유씨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한국 정부와 중국을 속이고 북한 신분증까지 위조한 것이다.


특히 유씨는 탈북자로 위장해서 한국에 들어온 뒤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2008년 영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했다. 이때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유광일에 성만 바꿔 영국에서 탈북자 행세를 할 때 사용한 것이다.



또 유씨는 2010년 유우성으로 개명하면서 출생월을 10월로 수정해 주민등록번호를 재부여받았다. 유씨의 실제 생일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상태다.


즉 1980년 10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북한에서 중국 국적(화교)으로 생활해온 ‘류가강’씨는 2004년 4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유광일’로 자신의 신분을 세탁했고 탈북자로 인정받아 주거지원금, 정착금 등 2565만원을 부정 수령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왕래할 때는 화교 유가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2007년에는 중국 호구증을 위조해 발급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조광일로 이름을 속이고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했고, 이 기간동안 한국과 영국에서 지원금을 수령했다. 그리고 밀입북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후 ‘유우성’으로 개명하고 생년월일을 바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에 이르렀다.

http://m.bluetoday.net/articleView.html?idxno=6516&menu=2


14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현철)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7700여만원의 정착지원금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월 유씨를 기소하며 공소시효가 5년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유씨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지원금 2500만원에 대해서만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씨가 부정수령한 정착지원금의 액수가 적지 않고, 자신의 국적을 숨기기 위해 적극적이고 치밀한 방법을 사용하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검찰은 유씨가 국적을 속인 것은 사기죄에 해당돼 1심 당시 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기죄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보다 2년이 길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 변경 여부에 대해 기초적이고 포괄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http://news1.kr/articles/1586090

17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은 2010년 수사에서 유씨가 2007년 2월부터 2009년 8월까지 국내 정착한 탈북자들의 부탁을 받고 중국과 북한에 거주하는 자신의 친척과 가족을 통해 북한 현지의 탈북자 가족들에게 26억원을 배달하고 수수료로 4억원을 챙긴 정황을 포착했다.

동부지검은 당시 유씨가 다른 사업자를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다 북한 송금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이같은 대북송금 브로커 사업(프로돈 사업)이 북한 보위부의 비호나 협조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유씨의 간첩 혐의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검찰에 구속된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도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위조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유씨가 간첩이 맞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우성씨는 "26억원이라는 돈은 만져본 적도 없다"며 "먼 친척 중에 중국에서 환치기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에게 제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줬고 조선족들 중 한국에 와있는 사람들이 돈을 부칠 때 이 통장으로 부치기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그 통장이 그렇게 이용되어 외국환거래법에 걸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불법이 될 줄도 몰랐다"면서 "그 통장을 거쳐간 사람 중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단돈 10원을 챙긴 것도 없다.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것이다"고 강조했다.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3/17/0701000000AKR20140317092600004.HTML

위조관련해서 관련자들은 적법한 처벌을 받아야겟지만
그와별개로 그가 간첩인지 아닌지 증거능력관련해서 볼필요가있가 봅니다.
 중국국적자 화교 유우성/유가강에 지원된 / 정착지원금반환과 사문서위조 외국환관리법 /금융 실명제위반
관련해서 추가처벌
해야한다봅니다.
그가 공식적으로 국적을 비합적인 방법으로취득/북한에 밀입국했다고 밝히고있으니  국적박탈과 추방하는게 좋겠습니다.

덧글

  • kuks 2014/03/19 23:05 # 답글

    검거 전부터 탈북자의 제보가 쇄도했다고 하지요.
    마침 몇몇 재입북 사례가 불거지면서 내사에 들어갔고 곧바로 수사망이 좁혀졌다고 하니...
  • NET진보 2014/03/19 23:10 #

    중국인이 불법으로 국적취득한 만큼 국적박탈과 추방이 좋다고생각하빈다.
  • plastic욱이 2014/03/19 23:21 # 답글

    느낌만 가지고서는 도체 처벌이 불가하니 깝깝할 수 밖에는 없네요..
    뭔가 시원하게 뭐가 나와주면 되지만 지금은 그저 국정원의 뻘짓으로 기록이 되었으니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보렵니다.
  • NET진보 2014/03/19 23:23 #

    그렇다고봅니다. 다만 불법 취득한 국적이니만큼.. 국적박탈하는게 좋다고봅니다.
  • ㅠㅊㅍ 2014/03/20 10:47 # 삭제 답글

    탈북자들 말은 반도 믿으면 안 되요 저 사람들은 자기나라를 배신한나라니 대한민국도 또다시 배반하기 쉬움. 지금도 자기밥그릇이 위협받을거같으니 자기 동포 팔아먹는거 좀 보세요
  • NET진보 2014/03/20 12:40 #

    합리적인 이유가없이 막연한 추정으로 재단하는건 이험하다봅니다/ 그와 별개로 행위에대한 객인의 비판이면 모를까요.
  • k 2014/03/20 12:48 # 삭제

    자기나라를 배신한나라?
  • egomaniac 2014/03/22 11:54 #

    일베충새끼들이 소위 말하는 '탈홍어'들을 자기 고향을 통수친 놈들이니 믿어선 안된다고 지랄하는 거랑 어쩜 그리 똑같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4/03/20 14:13 # 삭제 답글

    1. 지금은 간첩이냐가 문젠데 이런글 올리는건 본질을 흐리는 물타기 ㅋㅋㅋ 다른 건은 일단 간첩건 밝히고 나서 따지면 됨
    2. 채널 에이 이만갑에도, 원산서 사업하면서 떵떵거리던 집(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집이 있을 정도)딸이 내부 알력 때문에 망하고 탈북한 얘기 했었음
    3. 죽을까봐 탈북했다면서 열심히 종편 나와서는 평양에 있는 지인과 최근 통화에서 들었다면서 북한 정치권 루머 이야기하는 탈북자는 간첩 총책급일듯? ㅋㅋㅋ
  • NET진보 2014/03/20 14:32 #

    1. 불법은 처벌받아야하며 중국국적 화교 유우성이 탈북자로 위장 국적 취득과 세금을 지원받은사실은 유죄로 재판결과로 나왔습니다. 국정원의 증거조자의혹과 달리 이는 처벌받아야하는 사안입니다. 고로 물타기가 아닙니다.

    2. 3. 유우성의 불법 밀북북행위는 그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그는 중국인으로써 국적지위를 이용하였다 밝히고있습니다.
  • 토마토맛토익 2014/03/31 18:05 # 답글

    그런데 이런 식의 "나 누구누구의 지인인데 걔는......."이런 내용은 카더라아닙니까?
  • NET진보 2014/03/31 18:32 #

    탈북자분이 스스로 이야기한것이니까요 실명을 밝히구요.
    뭐 그렇게다지면 모든 증언은 카더라라는 위험서을 가지고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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